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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그리고 오늘

고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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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오르렴!

 

 

대학교 4학년 2학기 때 취업을 하기로 마음먹고 서울에 위치한 무역회사에 면접을 본 뒤 합격여부를 듣고 여쭤봤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나 서울 가도 되냐고 하니 가라며 아주 흔쾌히 보내주신 울 엄마.
워킹홀리데이 준비하고 있던 오빠, 대학교 3학년 1학년인 둘째와 막내. 가게에 일도 많았고 돈도 많이 들던 그때 고시원 한 달치 방값을 주시며 많은 형제자매에 본인의 꿈을 못다 펼친 애환을 자식들에게까지 물려주고 싶지 않으셨던지 난 그렇게 백팩 하나 메고 양손에 종이팩 하나씩 들고 서울로 상경할 수 있었다.

그때의 용기와 패기는 어디서 나왔는지;

첫 번째 고시원에선 두어 달 살았는데 회사에서 5분이 채 안 걸렸고 딱딱한 침상 침대였음에도 불구하고 내 공간을 처음으로 가졌다는 설레임에 너무 좋아서 작디작은 창문으로 야경 보며 하루를 마무리하곤 하였다. 당시 총무였던 분이 빚을 내서라도 여행 다니란 말씀을 계속 하셨고 티브이를 다 함께 볼 수 있는 휴식공간에서 낯선 사람들과의 대화도 좋았던 그냥 마냥 다 좋았던 22살의 나. 워킹홀리데이 나가는 오빠도 고시원 와서 내방 한번 보고 떠나고 그렇게 서울생활이 시작되었다.

두 번째 고시원은 대학교역 근처였는데 역에서 10분 이상 도보로 이동해야 고시원이 나왔는데 유동인구가 많아서 출퇴근길 활력소가 어마어마했었다. 바닥 생활만 22년 하다가 처음으로 폭신한 침대에서 자는 건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들이 막 솟구쳐 올라서 바닥에 머리카락 한올도 용납 못하고 깨끗이 정리하고 청소하고(무한반복) 방이 작다 보니까 어쩔 수 없는 루틴의 연속이었다. 

세 번째 고시원은 오래 살았기도 했고, 자매가 운영하시는 곳이었는데 고시원 내부의 깨끗함은 더없이 좋았고 공동주방에 국과 밥이 항상 상비되어 있었다. 백수인 시절이 잠깐 있었는데 그 국과 밥이 아녔더라면 난 더 서글펐고 더 추웠을 것이다. 걸어서 큰 마트도 가고, 걸어서 학교 운동장에서 운동도 하고, 서울에서도 좀 각박한 도시지역이었는데 군데군데 추억할 만한 곳들이 떠오르긴 한다. 출퇴근길에 봤던 그 사람들 바삐 움직이고 나도 그 속에서 바삐 움직이며 살았는데 내가 살았던 곳을 다시 방문하기란 참 힘든 것 같다. 둘러볼 곳이 총 여섯 군데. 이사 자주 다니면 안 좋다고 부모님께서 말씀하셨는데 20대에 많이도 옮겨 다녔다.  

 

22살이면 일찍 독립한 것도 아닌데 해보니 겁 없이 행동할 수 있는 아주 좋은 나이임이 분명하여 내 아이들에게도 일찌감치 독립의 중요성을 계속 강조하고 있다. '엄마는 너네들 독립하면 전갈 키울 거야' 하니 아이들이 '놀러 갈 때 보여주세요^^' 어릴 땐 이게 먹혔는데 지금은 둘째 아이가 '우리 다 크면 엄만 어디서 살 거야?'  '응 엄만 너네들과 아주 멀리 떨어져 살 거야' 하니 징징대면서 '한건물에서 살면서 나 밥 차려줘야지'  '내가 왜 차려주니 네 색시한테 차려달라고 하렴'  '싫어 결혼 안 할 거야' 징징징 ㅎㅎ

세군데의 고시원과 두 군데의 자취방. 나의 젊음이 저기에 다 녹아들어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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