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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그리고 오늘

서로 다른 입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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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수육과 먹으려고 무김치를 담갔다.

예전에도 분명히 식초가 들어가지 않았는데 남편은 식초를 넣었다며 은근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며칠 동안 1년에 들을 '식초'라는 단어를 다 들었을 정도로 남편의 강한 고집으로 인한 반격에 나 또한 내 입맛을 고수하기 위해 끝까지 반격을 해댔다.

 

연애 때부터 서로의 기억력의 오해로 인한 착각일 수도 있겠으나 지하철 광고란에 붙여진 말아톤 포스터 나오는 조승우를 보며 배우가 아니라는 남편 말에 십 만원 빵 내기를 하며 옥신각신하고 있으니 뒤에 서 있던 아저씨가 배우 맞다고 해줘서 이겼던 기억이 난다. 오죽했으면 알려주셨을까? ㅋ 남편과 나는 20여 년 정도 꾸준하게 정말 꾸준하게 기억력 테스트를 하고 있다. 서로 맞는 것도 틀린 것도 있으나 이젠 나도 기억이 희미해져 가는 건 자신이 없어(말싸움하기 싫어서) 내기는 안 하는 편이다. 그러나 이 입맛이란 게 결혼해서 같이 산 세월이 얼추 10여 년이면 맞춰질 만도 한데 도무지 안 맞춰지고 남편 입맛에 맞춰 장을 보고 외식을 하고 배달을 하고 내 몸이 그대로 가는 게 신기할 뿐이다. 명절에 친정집에 내려가서 바람 쐬러 항구에 가지 않는 이상 난 1년에 회를 한 번도 못 먹어 볼 정도로 남편은 회도 잘 안 먹고, 고기 굽는 냄새로 질려서 몇 점 안먹고, 대용량으로 하는 내 음식은 한번 혹은 두 번까지만 먹거나, 남이 해준 음식은 마음에(시각 후각) 안 들면 손도 안 댄다.

 

무엇이든 불평 없이 잘 드시던 친정아빠를 보고 자란 나는 반대인 남편과의 몇 백번의 식사시간으로 맞춰질 법도 한데 서로의 식성을 좁혀나가지 못해 남편 식성에 맞추는 걸로 택했던 것 같다.  뭐 백 프로는 아니지만. 정성껏 저녁 준비해 놓으면 피자 치킨 먹을래요? 물어보는데 아니요 라는 말을 못 하는 이유가 있다. 난 배달음식 시켜 먹는 게 싫어서 동생들과 자취할 때도 치킨 한번 시켜 먹었고, 결혼해서는 남편 있을 때만 배달시켜 먹는 터라 남편 입에서 피자, 치킨 얘기가 나오지 않으면 한 달 내내 이 두 가지 음식은 맛보기 힘든 음식이었다. 그래서 정성껏 차렸어도 흔쾌히 알았어요.라고 되받아치고 그 음식은 다음날 내 위를 가득 채워준다_내 땅 넓히기.희한하게도 내가 뭐 먹자고 하면 도리도리를 연신 해대는 건 왜 그런 걸까? 야채곱창 소내장탕 닭발 막창 선지 해장국 먹고 싶다고!! 

 

다들 엄마 음식에 입맛이 길들여진다고 하지 않나. 어머님 음식은 손이 많이 가는 한식이어서 두부조림, 참지 찌개, 두부전골, 청국장(진짜 진짜 맛있는 거!), 된장찌개(물 많으면 된장국이라고 한 마디씩 함) , 아삭한 김치 등등이다. 울 엄마는 음식을 잘 못하셔서 항상 대용량 사골곰탕, 팥죽, 된장국, 삼겹살, 생선 등등 서로 음식문화가 많이 달랐음이 분명하네. 같은 시골이였음에도. 다행인 건 아이들이 나와 식사하는 시간이 많고, 새로운 음식에 아예 손을 안 대려는 경향은 보이지 않음에 감사하고 있다. 남편이 요리는 나보다 꽤 잘하는 편이어서 혼자 살 땐 한 끼 식사 분량만 해서 먹는 스타일이고, 맛은 있으나 자기 음식에 비하가 아주 조금 있을 뿐 나와 다른 식성은 성실함으로 다 덮어버릴 수 있다.(칭찬 백 양동이 했음)

 

결국 수육 먹던 날 남편이 무김치에 식초 넣으려 하길래 넣었다 하니 더 넣어서 먹으면서 '맛있지?' 하길래 '맛있는데 내 입맛은 아니야' 했더니 그 뒤로 식초라는 단어를 더 이상 안 듣게 되었다. 본인 입맛에 맞춰 반찬 그릇에 무김치 담아 식초 넣어서 먹으면 될 일이었다. 아주 심플하게! 남편은 식초 넣은 무김치가 맛있으니 온 식구가 다 자기처럼 맛있게 느꼈으면 했겠거니 싶은 거였나 보다.   나도 그런 거다. 내가 한 음식 아무 말 없이 먹어 줬으면 좋겠다. 어쩌고 저쩌고는 꿈속에서 했으면 좋겠다. 잠꼬대로 인정해줄 테니.^^

 

요즘엔 뭐 사갈까? 라는 질문을 해줘서 이쁘다♡(2020.12.22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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